땡땡 탄생 90주년 대규모 회고전
에르제: 땡땡 展
LOCATION: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 Hergé Moulinsart 2018
‘땡땡의 모험(Les aventures de Tintin)’은 벨기에 브뤼셀 출신 만화가 에르제가 만든 만화 시리즈로 아스테릭스와 함께 프랑스-벨기에의 고전만화로 꼽힌다. 주인공 땡땡과 강아지 밀루가 세계 여행을 하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그 과정에서 악당을 무찌른다는 교훈적인 내용이다. 1929년 첫 발간 후, 약 50개 언어로 번역되며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아온 ‘땡땡의 모험’은 만화 또한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을 일깨워준 만화로 기억되고 있다. 이 만화를 집필한 에르제는 만화뿐만 아니라 회화까지 아우르는 뛰어난 실력의 예술가로 그만의 철학과 신념, 열정을 담은 작품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왔다. 특히, 에르제의 만화 속 인물들은 실존인물에서 영감을 받은 만큼 사실적이고 마치 살아있는 듯 해 많은 이들이 더욱 열광했다. 그리고 ㈜인터파크는 이런 에르제와 땡땡의 모험을 그대로 녹여낸 전시 [에르제: 땡땡]전을 기획했다. 1년 이상의 준비 과정을 거친 전시는 파리 퐁피두 센터를 시작으로 그랑 팔레, 런던의 소머셋 하우스, 덴마크를 거쳐 아시아 최초이자 국내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다. 오리지널 드로잉과 회화, 사진, 영상 등 총 작품 477점을 만나볼 수 있는 10개의 공간으로 기획해 많은 볼거리를 자랑한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평가받는 앤디워홀이 애정하던 예술가 에르제, 그리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모티브가 된 ‘땡땡의 모험’을 담은 전시를 새로운 모험이라 생각하고 지금 바로 땡땡과 함께 떠나보자.
“땡땡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작업은 항상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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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제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에서는 유명한 만화가이기 이전에 예술가로서의 에르제를 조명하며, 관람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1960년대 초, 회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당시 가장 현대적이었던 예술에 매혹되었던 것 등을 들여다볼 수 있다. ‘땡땡의 모험’이라는 만화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다른 느낌의 현대 미술을 보는 것 같은, 에르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에서는 제목 그대로 예술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에르제의 모습과 실제 그가 소장했던 예술품을 볼 수 있다. ‘20세기 소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접한 신문사 업무는 에르제에게 동시대의 그림과 조각들에 대한 기사는 물론, 최근과 먼 과거의 예술 운동까지도 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땡땡의 모험’이 탄생하고 친구들 및 지인들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에르제는 작품을 그릴 때 예술 운동을 참고하기 위해 이미지 기록(documentary image bank)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환갑의 나이에 현대 미술에 눈을 뜨게 된 에르제는 개인 컬렉션을 모으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예술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한다.
에서는 에르제 만화책의 탄생 과정,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땡땡의 모험’ 표지, 영상 미디어 아트, 아이디어 단계 스케치 등 ‘땡땡의 모험’, 그리고 에르제와 관련된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탄탄한 스토리와 풍부한 표현력으로 ‘이미지를 쓰는 소설가’이자 ‘예술적 스토리 작가’라 평가받는 에르제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기는 것을 좋아한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적 있다. 작가이자 만화가로서 에르제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세트와 환경을 꾸미고, 서사를 구축하고, 이야기의 문을 열고, 캐릭터들을 창조하며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하고 성장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진행되는 만화 방식이다. 그는 영화 연출에 사용되는 트릭을 비롯해 소설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변모시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과 세계를 구축해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반짝이는 별이 우리를 비춰주듯, 아름답고 감성적으로 꾸민 은 에르제 만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여주고 있다. 1940년, 독일 군대가 벨기에를 점령한다. 신문사 ‘20세기 소년’이 문을 닫았고, 에르제는 더 이상 신문사에 그림 연재를 할 수 없었다. 이후 땡땡의 모험은 보충판 ‘르 수와르 – 쥬네즈(청년판)’에 재등장해 1941년 7월까지 연재되다가, 이후에는 ‘르 수와르’의 자체 연재 만화로 등장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에르제는 만화가로서 성공적인 시기를 보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에르제가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원칙인 단순함과 가독성을 지키면서도 마침내 작품에 색채를 더해 <별똥별의 모험>을 창작한다. 에르제는 음영이나 그라데이션이 없는 은은하고 깔끔한 톤을 선호했다. 이전에 작업했던 흑백 앨범에 색깔을 더해야 하는 과업에 직면해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끝까지 그만의 스타일과 독특한 색감을 고수해나가며 본인만의 예술적 아이덴티티를 독자들에게 더욱 확실히 각인시켜주었다. 또한, 이 시기에 <황금 집게발이 달린 게>에서 아독 선장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캐릭터는 매우 감정적이며 퉁명스러운 태도, 급한 성미, 욕설을 퍼붓는 당당함 등 솔직하고 거침없는 캐릭터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얻기도 했다.
에르제의 스케치 과정과 스케치 단계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은 벽면을 채우고 있는 연필로 그린 보드를 통해 에르제의 뛰어난 초상화 솜씨를 보여준다. “전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스케치하고 줄을 긋고 삭제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가끔은 캐릭터 작업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연필로 종이를 뚫어버릴 때도 있어요!”라던 에르제의 말처럼 연필 한 획, 한 획에 정성이 들어있는 그의 스케치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오랜 시간 동안 만화는 마이너 예술로 간주되어왔지만, 에르제는 ‘땡땡의 모험’을 통해 만화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예술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예를 들어 아독 선장, 땡땡, 칼큘러스 박사를 그린 몇몇 스케치들은 뒤러, 홀바인, 다 빈치, 앵그르 같은 거장들의 작품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복잡성, 세심함, 정확하고 다채로운 톤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 자연스럽게 전시장 내부로 안내하는 에서는 땡땡의 모험 이외의 에르제 만화 시리즈를 볼 수 있다. 에르제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들에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 특히, 땡땡과 톰슨 형제, 아독 선장 등 ‘땡땡의 모험’에게는 확실히 그랬지만, ‘퀵과 플륍크’에게는 조금 덜했다. 에르제의 어린 시절을 본 따 만들어, 모든 시간을 장난치고 노는 데 보내는 캐릭터인데도 말이다. 반면, 에르제는 조, 제트와 조코(Jo, Zette and Jocko)의 캐릭터들에게는 전혀 애착을 갖지 않았다. 이 시리즈는 에르제가 의뢰받아 제작한 것으로, 자신만의 영감으로 창조하지 않았다. 그는 열정 없이 시리즈를 작업했고, 이에 스토리들의 숫자는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은 만화가로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에르제의 재능을 조명한다. 1930년대, 아뜰리에 에르제-광고가 출범했고, 에르제는 포스터와 심볼, 홍보 만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그래픽 디자인의 이념을 보여주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명료함부터 레터링, 분배, 간격, 색깔을 비롯해 클리어라인 드로잉 스타일의 기본 원칙을 구성하는 에르제의 특징들을 엿볼 수 있다. 예술가로서의 경력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중 하나는 ‘다람쥐 팀’이라는 홍보 연재 만화로 당시 디즈니 스튜디오 영상의 영향을 받았다.
에르제의 30대 시절, 가장 중요했던 전환점이자 사건은 중국인 친구 ‘창’을 만나고 푸른 연꽃을 출간한 것이다. 에서는 그의 만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동양인 아티스트와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으며, 강렬한 인상을 주는 붉은 카펫과 한 벽면을 따라 흘러가는 용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전까지는 백인 우월주의나 유색인종 차별 등의 내용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창과의 만남 이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서사를 보여주는 ‘새로운’ 땡땡의 모험이 시작됐다. 에르제는 ‘다른 캐릭터들’이 단지 땡땡을 위한 엑스트라로 남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결심했고, 친구 창은 그의 예술작품에 중국의 화풍이 더해지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공간은 여러 가지 작품들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들의 만남에 집중한다. 인디아 잉크를 사용한 보드, 푸른 연꽃과 연관된 20세기 소년 커버 일러스트레이션, 광고 전단지, 그리고 창의 개인 물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에르제는 항상 이야기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이 독학 예술가는 무엇이든지 흡수하는 태도와 무한한 호기심으로 서사 기법, 데쿠파주(découpage) 및 다른 기술들을 빠르게 습득하기도 했다. 에서는 에르제가 유럽 만화의 아버지가 되기까지의 창의적인 변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에르제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한 인물들(하비에르, 생토강, 맥마누스)부터 그의 첫 역작(first significant) 드로잉, 어린 시절의 끄적이던 낙서부터 능숙해진 보드, 미숙한 복제 기술에서부터 최고의 질을 가진 종이에 찍어낸 아름다운 프린트들, ‘르 보이스타우트’ 출판 직전에서부터 카스테르만에서 출판한 앨범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땡땡의 모험’시리즈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적 깊이, 예술적 아름다움, 과학적 사고력과 추리력, 인류 역사와 자연에 대한 소중한 깨달음, 나아가 정의로운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유럽의 초등 교과서에 실릴 만큼 교육적인 내용과 함께 전 세계, 전 연령대의 사랑을 받고 있는 ‘땡땡의 모험’은 가족만화의 고전이며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걸작이다. 그리고 이러한 에르제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은 관람객들에게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에르제의 삶과 ‘땡땡의 모험’의 시작과 기록을 상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며, 유익하다는 관람객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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